40대에 3평 정도의 작은 원룸에 살았다.
창문이 있었으나,
바로 앞은 맞은편 집의 벽으로 막혀있었다.
그러나 봄이 오면 그 담벼락을
덩굴이 올라와서 초록의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냈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덩굴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면서
위로와 힘을 얻었다.
그 당시 창문 앞은 벽으로 막혀 있었지만
매일 조금씩 자라나며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 덩굴을 보며 미래를 꿈꿨다.
창문은 '소통'이다.
나에게 창문은 세상과 나를
의미 있게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다.
나는 어딜 가든 창문에 집착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깥세상에서
만나는 내 마음을 살핀다.
창문은 나에게는 소통이다.
50대 지금 나는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내 방 침대 맞은편에는 큰 창문이 있다.
창문에는 커튼을 일부러 달지 않았다.
왜냐하면 항상 창문 밖의 풍경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창문을 통해
하늘의 별을 보며 잠이 드는 호사를 누린다.
창문은 '설렘'이다.
창문이 좋은 건
매번 다른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내가 보는 시간에 따라서
내가 보는 계절에 따라서
내가 보는 마음에 따라서
창문 밖의 세상은 시시각각
다르게 다가온다.
창문은 나에게
다양한 설렘을 가져다준다.
창문은 '생명'이다.
창문은 매 순간 힘들었던 때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방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하고 살 때,
창문은 유일하게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였다.
만약 창문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창문은 꺼져가는
나의 생명을 불씨를 지켜주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새벽 6시이다.
내가 앉아 있는 사무실 오른쪽에는
큰 창문이 있다.
이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은
조용한 새벽의 시간.
지금 난 창문을 통해
소통과 설렘과 생명을 받고 있다.
참 행복하다.
출처 : 단희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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